깜빡깜빡 하신다면 붓을 들고 깜짝 변신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는 누굴까? ‘유명’의 기준을 정하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파블로 피카소는 어떤 잣대로 재더라도, 열 손가락에 들 확률이 높다. 피카소는 세계적인 그림 경매시장에서 가장 비싼 값에 팔린 여러 작품들을 그린 화가인 까닭이다.

물가를 고려하지 않았을 때, 지난 10년 사이 경매로 낙찰된 상위 10개의 고가 그림의 가격은 2016년 11월 현재 우리 돈으로 환산했을 경우 점당 가격이 최소 1000억 원이 넘었다. 가장 비싼 그림은 지난해 낙찰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Les femmes d’Alger)들로 약 2050억 원(1억7900만 달러)에 팔려나갔다.

가장 높은 낙찰가를 기록한 10개 작품들 가운데 4개가 피카소의 것들이다. 값비싼 10위권 작품 가운데 복수의 작품을 진입시킨 작가는 그가 유일하다. 그 밖의 화가들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프란시스 베이컨, 앤디 워홀 등으로 성인이라면 그림 전시회나 박물관을 찾지 않았더라도 심지어 그 이름을 모르더라도 책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한번쯤은 접해봤을 그림을 그린 사람들이다.

지난 5월 11일,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현대 미술품 경매의 새로운 역사가 작성됐다. 파블로 피카소의 유화 ‘알제의 여인들( 1954~55년작)’이 1억7900만달러(약 2050억원)에 낙찰돼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사진=저작권자(c) AP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 5월 11일,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현대 미술품 경매의 새로운 역사가 작성됐다. 파블로 피카소의 유화 ‘알제의 여인들( 1954~55년작)’이 1억7900만달러(약 2050억원)에 낙찰돼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사진=저작권자(c) AP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물론 그림을 보는 재미 혹은 그림 감상의 맛은 가격에 꼭 비례하는 건 아니다. 그림이란 본능으로 감상할 수도 있고, 지식이나 혹은 전문적인 식견을 갖고 볼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피카소와 같은 유명화가들의 작품은 본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일정한 흥분을 안겨줄 수 있다.  어마어마한 유명세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거니와, 유명 작가의 작품들은 그만큼 줄줄이 달려있는 이런저런 얘깃거리도 많기 마련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그림은 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즐기기 어렵다. 작품에 대한 묘사나 그림에 뒤얽힌 스토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물론 충분히 흥미로울 수는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설명이 자세하고 풍부하다 해도, 직접 눈으로 한번 그림을 대했을 때의 느낌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전문작가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심지어 서너 살짜리 아기들의 그림 같지도 않은 그림까지도 포함해, 절대 다수의 그림은 본래 보여지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눈으로 봐줘야 비로소 가치를 획득한다.

헌데 아무리 유명한 작가가 남긴 걸작이라도 눈으로 감상하는 것만으로는 볼품없는 그림일망정 내 그림을 내 손으로 직접 그리는데 따르는 효과 혹은 효능을 발휘할 수 없다. ‘백견이 불여일행’이라고나 할까? 기실 내 손으로 연필이나 붓을 들고 뭔가를 그리는 행위는 그림의 본질 중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리니까 말 그대로 그림 아닌가?

그림이 아닌 일반 상품이라도 생산자와 수요자의 상품에 대한 이해나 접근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림에 있어 생산자, 즉 직접 그림을 그려보는데 따른 효과나 효능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 어떤 이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종이에 뭔가를 끄적거리거나 그리곤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행위를 일종의 스트레스를 덜어내는 과정으로 여기기도 한다. 보통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리는 행위를 통해 내면의 그 무엇인가를 분출 표현하는 건 사실 전문작가들이라고 다를 리 없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정도의 그림 그리기의 효과는 그냥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대체할 수 있다. 답답한 도시를 떠나 차를 몰고 휙 자연을 벗삼아 교외로 드라이브를 했을 때처럼 무엇인가를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는 상당 부분 저감되기 마련이다. 사실 눈길을 끄는 그림이나 아름다운 풍광이 아니더라도 관심을 A에서 B로 돌리는 순간 일단 A로부터 비롯된 스트레스는 풀리게 돼 있다.

그림 보기 혹은 작품 감상으로도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그림 그리기의 효과는 활력증진과 뇌활동의 증대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과학적으로도 사실상 입증됐다.

2014년 독일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60대 초반인 은퇴자 남녀 28명을 14명씩 2개의 그룹으로 나눠 10주간 실험한 결과 그림 등을 그리도록 한 그룹에 속한 사람들의 뇌 활력이 현저하게 커진다는 점이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 사진을 통해 확인됐다.

fMRI는 뇌활동을 측정하는데 흔히 이용되는 기계이다. 뇌는 특정부위별로 역할과 기능이 있는데, fMRI로 뇌를 촬영하면 어느 부위에서 뇌활동이 이뤄지는 지를 파악할 수 있다. 한때 마음을 읽는 기계로 fMRI가 통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독일 연구팀은 그림 그리기 그룹과 그림 감상 평가하기 그룹에 속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10주간의 실험에 착수하기에 앞서 피험자들을 대상으로 fMRI 사진 촬영을 실시했다. 두 그룹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인지기능이나 기억력 등이 동등한 수준이었다.

실험에 들어가기 전 찍은 fMRI 사진에서 두 그룹 사람들의 뇌 활동 패턴 역시 비슷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10주에 걸쳐 한쪽은 그림을 그리게 하고,  다른 한쪽은 그림 감상 토론 등을 하도록 한 뒤에 촬영한 fMRI 사진의 결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림을 직접 그린 그룹에서는 인지 기능과 기억력 등을 담당하는 뇌 부위,  후부대상피질 등의 기능이 크게 활성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그림 감상 평가 토론 등을 하도록 한 그룹에서는 실험 시작 전과 비교했을 때 뇌 활성화의 증가가 전혀 없었다. 그림 그리기와 그림 감상하기의 효과가 전적으로 다른 차원이라는 걸 보여준 단적인 증거였다. 

구태여 실험으로 증명하지 않는다 해도 그림 그리기 특유의 효능에 대한 경험담 등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예컨대, 50대 중반에 처음으로 붓을 잡기 시작해 늦깎이로 등단한 화가 청림 허옥순씨도 그 같은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http://news.mk.co.kr/newsRead.php?no=491416&year=2016 참조).

그는 50대 들어 뜻밖의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극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그림 그리기로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활력을 찾은 케이스이다.

fMRI를 통한 그림 그리기 효능을 살펴봤던 독일 연구팀은 그림 그리기가 한 개인의 과거 경험, 창의력, 통찰능력 등을 고루 동원하는 두뇌 활용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자각이 따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억력 등이 다져지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위에서 언급한 허옥순씨의 그림 주요 소재로 과거 여행지 등에서 인상적으로 봤던 소나무가 등장하는데 소나무 그림을 그리면서 과거 기억 등을 되살려 내게 되고 이에 따라 뇌의 활성, 즉 뇌신경 세포들간의 연계가 부쩍 늘어나는 과정을 거친다.

유명 작가의 작품 가운데 연작 혹은 동일한 소재의 그림이 많은 것도 비슷한 이치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피카소의 대표적인 연작인 ‘울고 있는 여인’(The Weeping Woman)이나 모네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수선화 그림 등이 그런 예가 될 수 있다.

두 작가가 동일 주인공 혹은 소재의 작품에 천착한 것은 해당 주제나 소재에 대한 그들의 뇌신경 세포 특유의 활력에서 비롯된다고 추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울고 있는 여인이나 수선화에 대한 남다른 풍부한 기억과 경험, 인지가 피카소와 모네로 하여금 해당 소재를 집중적으로 활용하는 그림을 그리게 유도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유명 화가든 보통 사람이든 뇌신경 세포의 작동 원리는 대차가 없다.  꼭 화가로 키울 생각이 아니더라도 어린 자녀들에서부터 이런저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 치매 등을 우려하는 은퇴자들에 이르기까지 그림을 그려야 할 이유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림 그리기는 단순한 여가 혹은 취미활동이 아니라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빠져선 안될 필수 요소일 수 있다. 그림 그리기만큼 입체적으로 머리를 써야 하는 활동도 일상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얘기이다.

김창엽◆ 김창엽 자유기고가

중앙일보에서 과학기자로, 미주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 등으로 일했다. 국내 기자로는 최초로 1995~1996년 미국 MIT의 ‘나이트 사이언스 펠로우’로 선발됐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문화, 체육, 사회 등 제반 분야를 과학이라는 눈으로 바라보길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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