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페렌츠 광장에서 만난 헝가리 음악의 영웅들

‘부다페스트’의 현지발음은 ‘부더페슈트’에 가깝다. 부다페스트는 도나우 강 서쪽의 부더 지역과 동쪽의 페슈트 지역이 통합돼 이뤄진 도시이다. 페슈트 지역은 19세기에 개발됐는데 이 지역에서 중심축이 되는 길은 언드라시 거리이다. 

언드라시 거리는 도나우 강변의 루즈벨트 광장에서 북동쪽으로 쭉 뻗어있는 직선대로인데 마치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축소해 놓은 듯하다. 샹젤리제 거리에서는 멀리 개선문이 시각의 초점을 이루고 있다면 이 곳에서는 멀리 헝가리 건국 1000년 기념 원기둥이 시각의 초점을 이룬다.

이 높은 원기둥이 세워진 곳에는 헝가리 역사에 등장하는 위인들을 기념하는 영웅 광장이 펼쳐져 있다. ‘영웅’이란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기인데 헝가리 사람으로서 전 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영웅 같은 인물은 단연 리스트이다. 

언드라시 거리에서 오페라 극장을 지나 영웅의 광장 쪽으로 약 300미터 더 올라가니 오른쪽에 리스트 페렌츠(Liszt Ferenc) 광장이 보인다. 그의 이름을 독일식으로 말한다면 ‘프란츠 리스트’가 되겠지만 헝가리에서 ‘프란츠(Franz)’는 ‘페렌츠’라고 하고 우리처럼 성(姓)을 이름 앞에 쓴다.

리스트는 독일계 헝가리 사람이었는데 그의 성(姓)은 독일식 표기로는 List가 되지만 이를 헝가리 식으로 읽으면 ‘리슈트’라고 발음되기 때문에 헝가리 표기법에 따라 Liszt로 표기하는 것이다. 

수많은 훌륭한 음악가들을 배출한 리스트 음악원.
수많은 훌륭한 음악가들을 배출한 리스트 음악원.

나무들이 심어진 이 길쭉한 광장에는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많이 있고 광장 끝에는 리스트에게 헌정된 헝가리 국립 음악원이 자리잡고 있다. 아르누보 양식의 화려한 이 리스트 음악원은 1907년에 세워진 이래로부터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많이 배출해 왔는데 건물 입구에는 이 음악원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였던 숄티 경(Sir G. Solti 1912-1998)의 독특한 기념상이 눈길을 끈다.

음악원 건물의 정면에는 리스트의 동상이 올려져 있는데 영웅적이고 신격화된 모습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피아니스트였고 수 많은 독창적인 음악을 작곡했던 그는 19세기 유럽 음악계에서 황제와 같은 존재로 군림하면서 헝가리의 위상을 음악을 통해 최상으로 높여준 헝가리 사람이니 그러한 모습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헝가리 조각가 머르톤이 제작한 이례적인 형태의 리스트 동상.
헝가리 조각가 머르톤이 제작한 이례적인 형태의 리스트 동상.

이처럼 국제적인 인물이었던 그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많은 언어를 구사했지만 정작 모국어인 헝가리어는 전혀 할 줄 몰랐으니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리스트 페렌츠 광장에 심어진 관목과 나무들 사이로 1986년 리스트 사후 100주년을 기념해서 세운 리스트의 동상이 보인다.

그런데 리스트가 누구였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  동상이 어떤 술주정뱅이에게 바쳐진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음악원 정면 중앙에 지나치게 영웅적인 모습을 한 리스트 동상에 헝가리 조각가 머르톤(L. Marton 1925–2008)은 심한 거부감을 느꼈을까?

아니면 모순으로 가득 찼던 리스트의 생애를 이 곳에서 한 번쯤 생각해 보라는 것일까? 이 동상이 세워졌을 때 부다페스트 음악계로부터 빗발 같은 비난이 쏟아졌다고 한다. 어쨌든 헝가리는 공산주의 치하에서도 예술적 표현의 자유가 받아들여지는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광장 한쪽 어느 레스토랑에서는 집시 음악가들의 연주가 들려온다. 그 음악은 달콤하면서도 격정적이다. 이들이 연주하는 선율 중에는 브람스의 헝가리 춤곡도 있는데 이 유명한 춤곡도 사실 따지고 보면 헝가리 집시 선율을 차용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유럽에서 헝가리 사람들은 가장 이질적인 민족 중의 하나이고 또 헝가리어도 가장 이질적인 언어 중의 하나인데, 집시는 이런 이질적인 언어를 쓰는 이질적인 민족 틈에 사는 또 다른 이질적인 민족이다. 수세기 동안 헝가리 사람들의 불신 속에서 살아오고 있는 이들은 정상적인 헝가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기는 매우 어려운 일인 모양이다. 하지만 집시 음악가들은 다른 부류의 집시라고나 할까.    

리스트 음악원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였던 숄티 경 기념상.
리스트 음악원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였던 숄티 경 기념상.

부다페스트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이처럼 불같은 리듬과 달콤한 멜로디를 연주하는 집시 밴드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연주는 신기(神技)에 가깝다.

그들이 즐겨 연주하는 음악은 브람스를 비롯한 외국인 작곡가의 작품들도 있지만 주로 19세기에 작곡되었고 민속적 색채를 띄고 있다.

그런데 집시음악은 헝가리의 고유 민속 음악으로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  

헝가리가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는 동안 귀족층은 서유럽의 전통음악을, 서민층은 고유음악과 집시음악을 선호했다.

헝가리 고유음악과 집시음악은 오랫동안 뒤섞여 공존해왔기 때문에 그 구분이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순수한 헝가리 고유 음악을 찾으려는 노력은 19세기에 시작되었고 20세기 초에는 코다이(Z. Kodály)와 버르톡(B. Bartók)에 의해 본궤도에 올라섰다. 

이 동갑내기의 두 음악가는 리스트 음악원 재학시에 만나 같은 목적과 열정으로 농촌과 산간벽지를 돌아다니면서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민요들을 당시 최신 과학기재였던 축음기로 채집하고 이것을 체계적으로 탐구했다.

이들은 종족 간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다른 양상을 비교 연구하는, 이른바 ‘종족음악학자’라는 새로운 음악가의 위상을 낳게 했다. 그러고 보면 헝가리 민족의 고유 음악유산을 찾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헝가리 음악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이 두 음악가도 헝가리 음악의 영웅으로 추앙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태남

◆ 정태남 건축사

이탈리아 건축사이며 범건축(BAUM architects)의 파트너이다.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 미술, 언어, 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로마역사의 길을 걷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이탈리아 도시기행>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리스트 페렌츠 광장에서 만난 헝가리 음악의 영웅들

정책브리핑_문화칼럼

답글 남기기